사천왕사지는 행정구역상 경주시 배반동에 위치합니다. 이 유적의 공식명칭은 경주 사천왕사지(慶州 四天王寺址, Sacheonwangsa Temple Site, Gyeongju)입니다. 경주시를 방문하면 역사나 문화재에 관심 있는 분들은 신라의 성산(聖山)인 낭산(狼山)을 방문하게 됩니다. 낭산은 낮은 구릉에 불과한 아주 작은 산인데, 이 곳에는 선덕여왕릉, 사천왕사지, 능지탑지, 황복사지 삼층석탑(구황동 삼층석탑) 등 여러 유적이 모여있는 곳입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호국사찰인 사천왕사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경주 사천왕사지
경주 사천왕사지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삼국사기 보다는 삼국유사에서 많은 사실 내용이 전하고 있습니다. 사천왕사지를 신라의 대표적인 호국사찰로 보는 이유는 삼국유사 기록에 잘 남아 있습니다. 삼국유사에서는 문무왕(文武王) 10년(670), 11년(671)에 신유림(神遊林)에 터를 정한 명랑법사(明朗法師)가 행한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통해서, 해로로 공격해 오던 대규모 당군(唐軍)을 풍랑으로 전멸시켜 버린 것입니다. 당군이 친입한다는 말에 급박하게 사찰을 짓지 못하고 비단으로 임시로 절을 꾸몄습니다. 문두루비법이 정확히 어떻게 행해진 의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채백(彩帛)으로써 절을 꾸미고 풀로 오방신상(五方神像)을 만들어 유가명승(瑜珈明僧) 12인(十二人)으로 하여금 명랑(明朗)을 우두머리로 하여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을 시행하였다' 하므로 추정만 할 뿐입니다. 이후 사천왕사는 679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었습니다.
사천왕사지의 가람배치
사천왕사지는 금당을 중심으로 앞쪽에 동서목탑을 배치하였습니다. 뒤에는 일반적인 강당지를 배치하는 대신 좌우 추정 단석지를 둔 독특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금당지(金堂址), 동서목탑지, 단석지를 볼 수 있으며, 이 중심사역 앞쪽으로 낮은 지대에 동서에 2구의 귀부(龜趺)가 남아 있습니다. 아쉽게도 두 귀부는 목이 결실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사역 입구 쪽 도로변에는 사천왕사지 당간지주가 보입니다.
이 외에도 익랑지(翼廊址)와 회랑지(回廊址), 앞쪽 낮은 지대에서는 작은 물길을 건널 수 있는 돌로 만든 다리, 그리고 비각지 등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밝혀졌지만, 지금은 옛터 보존을 위하여 흙으로 덮어 놓은 상태입니다.
발굴조사의 세부적인 내용은 아래의 발굴조사 보고서를 참조했습니다. 원문은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홈페이지에서 다운 받으실 수 있습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2, 사천왕사지Ⅰ 금당지 발굴조사보고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3, 사천왕사지Ⅱ 회랑내곽 발굴조사보고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4, 사천왕사지Ⅲ 회랑외곽 발굴조사보고서.
사천왕사지 단석지(壇席址)
사천왕사지 금당 후면 동서로 방형의 건물지가 보입니다. 이 건물지의 특이한 점은 바로 초석의 모양새입니다. 보통 나무기둥을 올리는 초석은 다듬은 초석을 쓰거나 자연석 초석을 쓰기도 합니다. 물론 이 시기는 다듬은 초석을 썼던 시기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주좌(柱座)도 아니고, 자연석에 그랭이질을 하지도 않은 구멍이 뚫린 초석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건물의 용도를 문두루비법에서 찾기도 하고, 다른 용도라고 말하는 연구자도 있습니다.
양지(良志) 스님의 작품
이 사지에서 또 흥미로운 부분은 과거에 기예에 뛰어났던 양지스님의 작품이 있다는 점입니다. 양지스님은 기록에 영묘사(靈廟寺) 장육삼존상 천왕상과 전탑의 기와, 천왕사(天王寺) 탑 하단의 팔부신장(八部神將), 법림사(法林寺)의 주불삼존(主佛三尊)과 좌우 금강신(金剛神), 영묘사와 법림사의 현판, 벽돌을 조각해 작은 탑을 만들고, 삼천불(三千佛)을 만들어 사찰의 탑에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보통 이 시대에는 누가 만들었다 보다는 누가 발원자인가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던 시기입니다. 양지스님의 기예가 얼마나 뛰어나고, 그 당시에 영향을 끼쳤으면 기록으로 남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천왕사 탑 하단의 팔부신장이 녹유신장상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이 사지에서 녹유상이 출토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일부는 경주박물관에 이미 옮겨진 상태입니다. 그런데 2006~2012년에 실시한 발굴조사를 통해 목탑지의 기단부에 쓰인 녹유신장상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현재는 서탑을 발굴조사 모습을 근거로 복원해 놓았는데, 옥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천왕사지 당간지주
높이는 약 2.4m이고, 위, 중간, 아래에 당간을 지지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사천왕사지와 선덕여왕릉의 관계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機三事)와 관련 있습니다. 선덕여왕이 자신의 묘를 도리천(忉利天)에 장사하라 하였습니다. 신하들이 묻자 선덕여왕은 낭산 남쪽이다. 하여 실제 그곳에 장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후 문무왕 때 그 아래 사천왕사를 짓게 되어 불교세계관의 사천왕천(四天王天) 위의 도리천(忉利天)이 현실이 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천왕사지와 선덕여왕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불과 몇 년 전의 사천왕사지와 현재의 사천왕사지의 차이점은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서탑을 복원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서탑의 녹유신장상(綠釉神將像)은 영롱하게 빛나고, 문양전은 예쁘게 재현해 놓았습니다.
사천왕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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