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지마왕릉은 경주 남산 서록의 포석정 근처에 위치합니다. 포석정에서 남쪽으로 약 300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왕릉의 모습
외관상 원형봉토분(圓形封土墳)으로 둘레는 38m, 높이는 3.4m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확한 내부 구조에 대해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인물
지마왕은 신라왕조 제6대 왕이며, 재위기간은 112년부터 134년까지입니다. 지마왕(지마이사금)은 파사왕(婆娑王)의 적자(嫡子)이며, 어머니는 사성(史省)부인, 왕비는 김씨, 애례(愛禮)부인으로 갈문왕 마제(摩帝)의 딸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마왕의 다른 이름은 지미(祗味)라고도 합니다.
“삼국사기”에서 지마왕대 있었던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마왕 2년(113년) 3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내빙(來聘)하였다.
지마왕 4년(115년) 2월에 가야(加耶)가 신라(新羅)의 남변(南邊)을 침입하였다. 7월에 왕이 친히 가야를 칠 때 보(步)ㆍ기병(騎兵)을 거느리고 황산하(黃山河)를 건너는데, 가야인은 군사를 덤불에 숨겨 놓고 기다렸다. 왕이 알지 못하고 직진하자, 복병이 일어나 두어 겹으로 에워싸니, 왕이 군사를 휘둘러 분격(奮擊)하여 에움을 뚫고 물러왔다.
지마왕 5년(116년) 8월에 장수를 보내 가야에 침입할 때, 왕은 정병(精兵) 1만 명을 거느리고 그 뒤를 이으니, 가야는 성(城)을 둘러 굳게 지키고, 마침 비가 오래 오므로 이에 도로 돌아왔다.
지마왕 10년(121년) 4월에 왜인이 동변(東邊)을 침범하였다.
지마왕 12년(123년) 3월에 왜국과 강화하였다.
지마왕 14년(125년) 정월에 말갈(靺鞨))이 신라 북경(北境)에 크게 쳐들어 와 관리와 백성을 죽이고 노략하더니 7월에는 또 대령책(大嶺柵)을 습격하여 이하(泥河)를 지나오므로, 왕이 서(書)를 백제(百濟)에 보내어 구원을 청하니, 백제는 다섯 장군을 보내어 도와 줄 때, 적이 듣고 물러가 버렸다.
지마왕 23년(134년) 8월에 왕이 돌아가니 아들이 없었다.
지마왕대의 정세
위의 사실로 살펴보면, 지마왕 때의 신라는 북 ․ 동 ․ 남쪽의 3방면의 국가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즉, 북으로 말갈, 동으로 왜(일본), 남쪽으로는 가야를 말합니다. 한편 백제와는 우호적인 관계였던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기사에서는 생략하였지만, 지마왕대 유독 지진, 가뭄, 폭우 등의 자연재해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으며, 후계를 이을 아들이 없어서, 이후 일성왕(일성이사금)이 즉위했습니다.
※ 포석정부터 산책길을 따라 지마왕릉, 삼불사와 배동 석조여래삼존입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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