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망덕사지(望德寺址)
경주시의 고즈넉한 장소 망덕사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망덕사지 바로 근처에 사천왕사지가 있습니다. 사천왕사(四天王寺)는 나당전쟁 당시 신라의 호국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망덕사는 당을 속이기 위해 지은 사찰이라 그런지 사천왕사지 보다는 상대적으로 관심에서 멀어지나 봅니다. 그러나 망덕사(望德寺)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호국사찰이라 할 수 있고, 삼국사기 신문왕 5년(685)에 완성되었다고 전하는 사찰이므로 우리나라 역사에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망덕사지의 위치와 현황
망덕사지는 행정구역상 경주시 배반동에 위치합니다. 낭산(狼山) 기슭에 위치한 사천왕사지에서 경주시와 울산시를 잇는 산업로 바로 건너가 망덕사지입니다. 현재는 금당지와 앞쪽으로 동서 목탑지가 남아 있으며, 서탑 쪽에는 망덕사지 당간지주가 위치합니다. 망덕사탑의 심초석의 평면형태는 특이하게도 팔각형입니다. 그 가운데 사리공이 있습니다. 1969년~1971년 동안 3차례 문화재관리국에서 발굴조사하여 어느 정도 가람배치에 대하여 파악하고 있고, 최근에도 망덕사지에 대한 조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망덕사의 창건 배경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는 당나라와 나당전쟁(670~676)을 치르게 됩니다. 670년, 671년 당이 대규모로 신라를 침략하려 하자, 사천왕사에서 문두루비법을 행해 당나라 군의 배가 모두 풍랑에 침몰되어 침략이 좌절되었습니다. 나당전쟁이 끝나고 679년에 당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사천왕사를 지었다는 소문이 당나라 왕실에 전해져 이를 확인하고자 사신을 파견했습니다. 당 고종은 예부시랑 악붕귀(樂鵬龜)를 신라에 보냈습니다. 당의 사신을 속이고자 당시 문무왕(文武王)은 사천왕사 건너편에 망덕사를 지었고, 새로 지은 절에 악붕귀를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악붕귀는 "이 절은 사천왕사가 아니라 망덕요산(望德遙山)의 절이다." 라며 새로운 절에는 끝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에 신라의 관리들이 악붕귀에게 뇌물을 주었고, 귀국한 악붕귀는 고종에게 "신라는 천왕사를 짓고, 절에서 황제의 만수무강을 빌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이후 새 절의 이름은 악붕귀의 말에서 딴 망덕사(望德寺)가 되었다고 합니다.
망덕사에 대한 이후 기록
삼국사기에는 경덕왕(景德王) 14년(755년)에 망덕사 탑(13층)이 흔들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해 당나라에서는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났고, 당시 신라 사람들은 "당을 위해 지은 절이니 그에 응한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삼국사기에는 3차례 동서탑이 서로 부딪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원성왕(元聖王) 14년(798년) 망덕사의 두 탑이 마주 부딪쳤다.
애장왕(哀莊王) 5년(804년) 망덕사의 두 탑이 흔들려 서로 싸우는 듯하였다.
헌덕왕(憲德王) 8년(816년) 망덕사의 두 탑이 흔들려 서로 싸우는 듯하였다.
망덕사와 관련된 설화
망덕사와 관련된 기록으로는 효소왕 6년(697) 낙성회를 행할 때 효소왕이 진신석가(眞身釋迦)를 알아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한 일, 그리고 망덕사 선율(善律)이라는 승려가 《육백반야경》(대품반야경)을 사경하지 못하고 죽자 염라대왕에 의해 환생하게 되어 사경을 마저 완수할 수 있었다는 얘기 등입니다.







사천왕사지 길 건너가 바로 망덕사지입니다. 사천왕사지 답사 오신 분들은 망덕사지도 보고 가세요.
망덕사지
지도위에서 위치를 확인하세요
map.kakao.com